Stories about why and how it was built

We have a dream that others may think not possible.

여기에선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산147-6번지에 트리나 하우스가 지어진 얘기들을 써 볼까 한다. ThreeNa House는 저 허드슨 강을 바라보고 있는 Hana, Gina, and Nina를 위해서 지어진 집이다. 세상 풍파에 이리저리 흔들리다 힘들면, 아빠가 살던 곳에 와서 잠시 쉴 수 있는 곳으로…

모든 일에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저 아이들을 위한’ 것은 일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었다. 누구나 다 로망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간다. 나는 ‘바닷가 언덕 위에 하얀 집’을 짖고 싶었다. 그것이 프로박테리야 (ProBacteria, Proletariat)인 나의 로망이였다. IMF 시기에 정처없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내가 한 나와의 약속이었다. 20년이 되기 전에 꼭 돌아와서 바닷가 언덕 위에 하얀 집을 지으리라. 약속은 늘 깨지라고 있는 모양이다. 20년이 조금 넘어서야 ThreeNa House를 짖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에서 뭐 꼭 ThreeNa House랑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늘어놓은 것은 우리의 삶이 뭐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들이 서로 얼키고 설키어서 일어나고, 우린 그 속에서 만수산 칡드렁처럼 살아가기 때문이다. 잘 보면 그 칡드렁에서 원줄기라는 것이 있다.

이 잡다한 글들의 마지막에는 5년이 지난 2025년의 얘기를 간단히 쓸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VS. 내가 좋아하는 일

2019년 겨울, 세상에 우한폐렴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몇 덜 전에 Air Traffic Simulation & Optimization이라는 연구를 완전히 접었다. 그러게, 꼭 뭐 좋아서 했던 일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그 길에 들어섰다. 나름 게으리진 않았으니, 성과도 좋았다. 그러나, 늘 남의 외투를 걸치고 있는 느낌! There is no glorious retirement. But you can quit in your prime time! 수년간 같이 연구를 했던 선임 연구원 Harry Swenson의 말이다. 어느날 그는 그의 신념을 실천했고, 나도 나의 prime time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왜 인지는 몰라도 뭘 잘 했다고 상을 받은 날이었다.

피는 물 보다 진하다! 큰 딸 Hana는 뮤지컬을 좋아했다. 우리 가족은 대략적으로 음치이면서 몸치다. 하나는 무대 뒤에서 우산을 돌리는 역활에 만족하면 몇 년을 뮤지컬 무대에서 보냈다. I am a penny in musical. But people say I am good in painting. Do you think I can study visual art? 아빠 몰래 다니년 보컬 과외를 그만두던 날 하나가 한 말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나에게 할 때가 온 것 같다. 할아버지가 화가였다는데….

하나는 Pratt Institute in New York로 진학을 했고, 막내 Nina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글게, 걱정이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NASA에서 연구를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아서 건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런 저런 건축관련 수업도 들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바고 건축학과에 진학을 했다. 그 해 봄엔가 COVID-19이라고 했다. 그 분야에 일하는 지인이 적어도 2/3년은 걸릴거란다.

해질녘 길을 걷다가 이 2/3년에 땅을 사 둔 남해에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문뜩!

내가 할 수 있는 일 VS. 내가 좋아하는 일

2019년 10월에 긴 백수의 길에 접어들었다. 2020년 봄 학기부터 근처 Local college에서 건축학 수업을 열심히 수강했다. 아! 새로운 세상이었다.

우리는 늘 ‘나에게 가능한 일’과 ‘내가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방황한다. 가능한 일에 베팅하는 것은 최대 수익률 50%이다; 최소 수익률도 50%다. 세상에 내가 좋아하고 가능한 일은 많지 않다. ‘좋아하는 일’에 베팅하는 것은 최대 수익률 100%다; 최소 수익률도 50%다. 나라면 가능한 일을 선택하겠어. 내가 좋아하는 일이 꼭 되리라는 보장이 없잖아. 나는 늘 이렇게 조언했다. 그러나 난, 늘 최대 수익률 100% 베팅했다. 차후에 발생할 수 있는 경쟁자는 초기에 제거하는 것이 후한이 없다.

미쿡에서 2021년 1월 15일에 세계에서 최초로 모네나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의료계 종사자들을 우선 대상하는 하는 아주 실험적인 백신 접종이었다. 루머와 풍문이 흉흉했다. 나는 의료계 종사자도 아니었고 초고령자도 아니었지만, 2021년 1월 15일 오후 늦게 백신 접종을 했다. 2주 뒤인 2월 11일에 2차 접종을 하고, 다음 날인 2월 12일에 한국행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 외에는 거의 승객이 없었고, 승무원도 2명인가 그랬다. 지난 2021년에서 2024년 사이에 한국을 14번 왔다 갔다 했다; 한국 비자가 없는 미국 시민권자는 한국에 최대 3개월을 머물 수 있다. 소위 자가격리라는 것을 6번인가 했다. 콧구멍에 면봉을 넣는 것은 49번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운이 좋았다. 저 사람들처럼 국가가 지정한 코로나 격기시설에 끌려간 적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1% 미만의 가능성이 나에게는 적어도 49% 이상이었다. 사실 나에게도 그 모든 일이 1% 미만이었지만, 나는 그 나머지를 ‘eager’와 ‘enthusiastic’이란 단어로 채웠다. 그래도 50%를 넘길 수는 없었다. 그냥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 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시작한 일들이 몇 번 있었다; 그 일들은 역시나 실패했다.

용소리; 용이 있었던 곳이란다

.남해 사람들은 사람을 ‘울 동네 사람들’과 ‘울 동네가 아닌 사람들로 구분한다. 뭐 사실 촌이란 곳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남해는 좀 더 특이하다. 엄마와 아빠가 남해에서 태어나고 자라야만, 그들의 자녀는 비로소 ‘남해 사람’이 된다. 내가 남해에서 태어나도 엄마 아빠가 성골이 아니면, 나도 결코 성골이 될 수 없다. 아님, 진덕여왕이 죽기를 기다려야 한다. 나는 그렇게 보면, 퇴골이다. 살다보니, 소위 남해안 관광벨트 프로젝트에 잠시 참여하게되었다. 1997/8년 정도의 일인 것 같다. 그 때 남해를 좀 더 자세히 알게되었다. 내가 태어난 전라도 광양 옥곡과도 가깝고, 천성적으로 기관지가 좋지 않은 내가 노년에 살기에 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에 온 이후로도 남해를 자주 방문했다. 사실, 한국을 방문할 때는 언제나 남해를 갔다.

내가 처음에 땅을 알아본 동네는 주로 다랭이마을이 있는 남해 남면과 여수시의 야경이 보이는 서면의 남쪽 일부였다. 확- 트인 태평양도 보이고, 전체적으로 동네도 약간 높아서 마음에 쏙- 드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계약서 싸인을 할 정도의 진도가 나갔을 때에는 웬지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최종 계약을 하지 않는 핑계는 자꾸 생겨났다. 한번씩 같이 갔던 동생도 “도대체 어떤 땅을 원하는거야?” 나도 잘 몰랐다. 사실은 내가 마음에 둔 땅은 있었지만, 그런 땅을 살 돈이 없었다.

바닷가 언덕 위 나만의 햐얀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사방팔방이 바다인 남해에서도 흔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욕심이 과했다. 확- 트인 전망, 남의 눈을 전혀 보지 않아도 되고, 장래에 내 집 앞에 다른 집이 설 가능성이 없는 그런 땅, 길지는 않아도 어느 누구도 들어 오지 않을 작은 산책로가 있는 땅, 80평 정도의 2층 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 주위의 집들과는 최소한의 거리를 둔 땅, 그런 땅을 나는 원했던 모양이다.

10년 이상의 발품을 팔아서,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산146-8번지를 샀다. 영구 조망을 위해서 그 앞 400평도 같이 샀다. 돈? 내가 여지껏 돈을 먼저 가지고 일을 시작한 적은 없었다. 어쩌하다보니, 이 땅이 내 손에 들어왔다. 처음에 땅 주인이 요구한 금액은 총 7억이었다. 나는 그런 돈이 그 때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땅 주인이 귀뚬해 준다. 많은 사람들이 계약을 했던 땅이지만, 여지껏 주인을 찾지 못한 땅이란다. 땅을 팔아야 하는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할까? 법무사 사무실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다시 그 땅에 가 보았다. 아래 위 여기 저기를 살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집을 지을 수 있을 만한 평평한 자리가 없고, 경사도 심하다. 그 아래는 바로 절벽이네. 어쩌어찌 바다 쪽으로 내려가서 암반의 갈라진 방향과 크기, 그리고 그 상태를 살펴보았다. 진입로가 될 수 있는 곳은 적게 잡아도 경사가 25도는 될 것 같다. 건축허가가 날 것 같지 않다. 이런저런 분쟁도 많은 동네란다. 토목/건축을 잘 아는 지인에게 문의하니, 건축허가를 받을 확률이 없단다.

할 만큰 하고도 아니되면, 죽어서 내가 뭍히기에 좋은 땅이다!

디지인, 설계, 주경야독 & 건축허가

2019년 겨울, 세상에 우한폐렴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몇 덜 전에 Air Traffic Simulation & Optimization이라는 연구를 완전히 접었다. 그러게, 꼭 뭐 좋아서 했던 일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그 길에 들어섰다. 나름 게으리진 않았으니, 성과도 좋았다. 그러나, 늘 남의 외투를 걸치고 있는 느낌! There is no glorious retirement. But you can quit in your prime time! 수년간 같이 연구를 했던 선임 연구원 Harry Swenson의 말이다. 어느날 그는 그의 신념을 실천했고, 나도 나의 prime time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왜 인지는 몰라도 뭘 잘 했다고 상을 받은 날이었다.

피는 물 보다 진하다! 큰 딸 Hana는 뮤지컬을 좋아했다. 우리 가족은 대략적으로 음치이면서 몸치다. 하나는 무대 뒤에서 우산을 돌리는 역활에 만족하면 몇 년을 뮤지컬 무대에서 보냈다. I am a penny in musical. But people say I am good in painting. Do you think I can study visual art? 아빠 몰래 다니년 보컬 과외를 그만두던 날 하나가 한 말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나에게 할 때가 온 것 같다. 할아버지가 화가였다는데….

하나는 Pratt Institute in New York로 진학을 했고, 막내 Nina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글게, 걱정이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NASA에서 연구를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아서 건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런 저런 건축관련 수업도 들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바고 건축학과에 진학을 했다. 그 해 봄엔가 COVID-19이라고 했다. 그 분야에 일하는 지인이 적어도 2/3년은 걸릴거란다.

해질녘 길을 걷다가 이 2/3년에 땅을 사 둔 남해에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문뜩!

My last story is ongoing…

부모는 아이들은 lead 하거나 push 할 수 없다. 그냥 이런저런 길들을 보여주고, 아이들이 가지는 궁금증에 답할 뿐이다. 그냥 막연히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이 전부이다. 아이들이 좋은 학교로 가는 것은 따지고 보면 인생을 쉽게 가는 길이지만, 꼭 그렇다고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과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삶은 끝을 모르고 죽어가는 장거리 경기 같기 때문이다.

ThreeNa House는 저 두 사람을 위해서 지은 집이다. One is my single mom who is now in a nursing home. The other is my younger sister who has been in a mental hospital for longer than 20 years. 그러나, 어느 누구도 ThreeNa House에 머물 수가 없었다. I just wanted them to stay in ThreeNa House for just one night; But it is failed; I knew. But I have to keep my word.

ThreeNa House 어딘가에는 오래된 열쇠가 하나 있다. 우리 식구가 처음으로 산 10평 짜리 주공아파트 열쇠다. 2000년 봄이 오기도 전에 나는 쫒기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는 노모, 부곡 정신병원에 있는 여동생, 근처 전문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서 주경야독하는 남동생을 뒤로 하고 나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많이 슬펐고 눈물이 났다. 나는 이 열쇠를 30년 가까이 내 몸에 지니고 있었다. 언젠가 바닷가 언덕 위에 하얀 집을 지어서, 거기에 걸어두고 싶었다.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면,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가 나온다.